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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 순례길

    산티아고 순례길로 나서다.

    몇 년 전 TV스페인 하숙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이 있다. 영화배우 유해진, 차승원, 배정남이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순례자들을 위한 숙박시설인 알베르게를 운영하며 일어난 일들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언젠가부터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된 산티아고 순례길은 많은 사람들이 찾고 싶은 여행지가 되고 있다. 실은 여행이라기보다 삶에 지친 사람들이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떠나는 고행의 길임에도 막연히 TV에서 보여지는 길의 아름다움과 고상한 무언가가 막연한 로망이 되어 종교적인 의미와도 상관없이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은 버킷 리스트에 많이들 올리곤 하는 것 같다.

     

    이 책을 쓴 김진세 작가는 정신과의사이다. 자신에게 찾아온 슬럼프를 이겨내기 위해 상담실을 벗어나 한 달 간의 순례길에 나선 그의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위로가 필요하다. 정신과의사라고 예외일 리는 없다. 이 책의 부제가 위태로운 정신과의사의 행복한 산티아고 피신기인 이유가 아닐까 싶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작가는 한 달간 800킬로미터를 걸었다고 한다. 달랑 두벌의 옷으로 한 달을 버티면서. 그의 길은 프랑스길의 시작인 생장피드포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첫 며칠은 혼자 떠난 것을 후회도 했다. 누군가 동행이 있었다면 외로움이나 괜한 걱정이 덜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러나 그것도 기우였다. 길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친구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혼자 걷는 길인 동시에 동행이 존재하는 여행, 서로를 배려하고 돕는 동업자 정신으로 뭉친 동행이 어디에나 있었다.

     

    그렇게 길 위에서 여러 나라에서 온 여러 사람들과 만난다. 그들은 하나같이 길을 걷는 사연이 있고 그 길 위에서 위로받으며 새로운 무언가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나이도 문제가 안 된다. 어린 학생에서부터 노인까지 자기의 속도에 맞게 완주의 꿈을 꾸며 혼자 묵묵히, 때로는 동행과 함께 길을 걷는다.

     

    걸음이 느려 힘들지만 반드시 해내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느린 만큼 더 오래 걷는다고 한 스위스 소녀, 2년 전 아버지를 여의고 아버지가 함께 걷자고 했던 그 길을 걷고 있는 덴마크 청년, 양쪽 발에 잡힌 물집으로 고생을 했지만 다시 이 길을 걷겠다던 호주 할아버지, 그리고 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한결같이 길을 걷는 도전을 삶의 도전으로 이어가는 순례자들이었다.

     

    길은 순례자에게 친절하기도 하지만 모진 날씨와 거친 바닥을 드러내며 발목을 잡기도 한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순탄한 시절이 있는가 하면 견뎌내야만 할 고통이 기다리고 있고 헤쳐 나가야 할 시련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책에 소개된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보며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다만 삶을 대하는 그 사람의 태도와 이겨내려고 노력하느냐 포기하느냐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길이 건네는 말

    이 모든 고행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길은 결국 옳았다고 말한다. 방황하던 마음은 본래의 모습을 찾고, 몸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으며 욕심과 한계와 의지에 대한 통찰을 주었다고 말한다. 이 모든 변화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이라고.

     

    요즘은 SNS를 놓으면 관계가 단절되고 세상에서 멀어지는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나를 보여주고 나를 알리는 일이 너무나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오히려 외로움을 느끼고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어쩌면 혼자 걷고, 생각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를 진리라고 믿는 사람이다. 아무리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풍족한 구중궁궐에서 산다고 한 들 세상에 혼자만 남아있다면 살아갈 의욕이 생길까.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과 부대끼며 그들을 이해하며 사는 삶에서 인간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감히 믿는다.

     

    언젠가 산티아고 길을 걷고 싶다. 비록 한 번에 완주할 체력이 안 된다 하더라도 살아온 날들과 감사할 일들에 대해 되돌아보면서 앞으로의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나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다. 이 책의 제목처럼 길은 나에게 어떤 말을 건넬지가 무척이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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